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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네임드사다리 얼마전에도 썼지만 또 써봅니다.여성만의 입단대회는 조영숙·윤희율 이후에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도전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늘어나 1990년대 중반엔 15명 정도로 늘어났다.한국 바둑의 세계에서만은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는 말이 통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는 조영숙·윤희율 두 여성인데, 그들은 남성과 등등한 입장에서 프로기사가 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만의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최초의 여류 프로기사 중 조영숙은 아마추어 5단인 부친 조인규씨로부터 바둑을 배운 것이 여성 입단의 길을 터놓은 영예를 안은 계기가 되었다. 부친이 보기에 조영숙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괄괄해서 걱정이었다. 부친은 그 성격을 좀더 차분하게 해주기 위해 딸을 앉혀놓고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토프세이1975년의 일이다. 당시 조영숙은 28세의 신혼 주부였고, 윤희율은 그보다 두 살 아래인 미혼여성이었다. 두 여성은 중학생 때부터 바둑을 잘 두기로 유명한 소녀였다. 그들은 이미 1963년에 <조선일보> 주최의 제1회 여성 바둑왕전에서 우승해 두각을 나타낸 바 있었다. 당시 조영숙은 중3으로, 5급 이상이 참가하는 갑조에서 우승했으며, 윤희율은 중1로, 5급 이하가 참가하는 을조에서 우승했다.그녀는 결혼도 바둑과 연관이 있다. 입단 전에 한국 기원에 다니면서 바둑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기원에 바둑을 배우기 위해 온 사람이 배필이 된 것이다.남성들과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은 프로기사가 될 수 있는 규정에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두뇌 스포츠인 바둑에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초창기 입단 규정에는 남자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달리 구별하지 않은 것이다.남고딩의 해외사설놀이터 현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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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10: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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